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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장시장의 역사와 문화

왕건-이태복 2026. 4. 1. 07:57

대한민국 최초의 상설시장, 광장시장(廣藏市場)의 120년사

서울 종로구 예지동 6-1번지. 청계천 물줄기를 따라 형성된 광장시장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굴곡을 오롯이 담아낸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단순한 전통시장을 넘어, 일제강점기 민족 자본을 지켜내기 위한 투쟁의 산물이었으며, 전후 복구 시기 서민들의 생명줄이었고, 오늘날에는 전 세계인이 찾는 'K-컬처'의 발신지가 되었습니다. 광장시장이 걸어온 120년의 긴 여정을 심도 있게 조명합니다.

1. 민족의 자존심으로 세운 경제적 보루 (1905년 ~ 1910년대)

광장시장의 탄생 배경에는 구한말의 비극적인 역사가 서려 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본 상인들이 남대문시장(당시 선혜청 창내장)의 경영권을 장악하며 조선 상권을 잠식해 들어오자, 조선의 상인들은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광장주식회사의 설립

이에 대응하기 위해 예지동의 거상이었던 김종한, 박승직(두산그룹 창업주), 장두현 등 뜻있는 인사들이 모여 자본금과 토지를 출자했습니다. 1905년 7월 5일, 한성부로부터 시장 개설 허가를 받아 '광장주식회사'가 설립되었습니다. 이는 외국 자본에 의존하지 않은 대한민국 최초의 민족 자본 상설시장의 탄생이었습니다.

이름의 유래와 배오개 시장

본래 광장시장의 터는 조선시대 '배오개(이현)'라고 불리던 유서 깊은 시장터였습니다. 초기에는 광교와 장교 사이에 시장을 세우려 하여 '광장(廣長)'이라는 이름을 고려했으나, 홍수 피해 우려로 현재의 위치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널리 모아 간직한다'는 뜻의 광장(廣藏)으로 한자를 바꾸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역사적 가치: 광장시장은 일본 상인들이 주도하던 근대적 시장 체계에 맞서 조선 상인들이 스스로의 생존권과 경제적 주권을 지키기 위해 만든 '경제 독립운동'의 현장이었습니다.

2. 시련과 성장의 시대 (1920년대 ~ 1950년대)

일제강점기 동안 광장시장은 조선인들의 생필품 공급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곡물, 땔감, 해산물, 옹기 등이 주거래 품목이었으며, 경성 최대의 도매시장으로서 전국 각지의 물자가 이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다

1950년 한국전쟁은 광장시장에 궤멸적인 타격을 주었습니다. 폭격으로 인해 시장 건물의 80% 이상이 소실되었고, 시장 기능은 마비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 직후, 갈 곳 없는 피난민들과 상인들이 다시 배오개 터로 모여들었습니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구호물자와 생필품이 거래되며 시장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1959년에는 대대적인 현대화 공사를 통해 3층 규모의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섰고, 이는 당시 서울에서 가장 현대적인 시장 건축물 중 하나로 꼽혔습니다. 이 시기를 거치며 광장시장은 소매 중심에서 도매 중심으로 체질 개선을 시도하게 됩니다.

3. 섬유와 혼수의 메카로 군림하다 (1960년대 ~ 1980년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대한민국이 경공업 중심의 성장을 이어가던 시기, 광장시장은 '섬유와 의류'의 중심지로 우뚝 섰습니다.

동대문 패션의 모태

당시 광장시장은 전국에서 유통되는 한복지, 양복지, 면직물의 70% 이상을 점유했습니다. 시장 내부에는 수천 개의 원단 가게가 밀집해 있었으며, 전국의 상인들이 새벽차를 타고 올라와 물건을 떼어갔습니다. 현재 세계적인 패션 중심지인 동대문 시장의 뿌리는 사실상 광장시장의 포목상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딸을 시집보내려면 광장시장으로 가라"

혼례 문화가 발달하면서 광장시장은 '혼수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화려한 한복부터 이불, 자수 제품, 폐백 음식까지 결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쇼핑 공간이었습니다. 이 시기 광장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축복의 과정을 준비하는 문화적 공간이었습니다.


4. 먹거리와 관광의 성지로 거듭나다 (2000년대 ~ 현재)

섬유 산업의 중심이 공장과 대형 유통망으로 옮겨가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광장시장은 '전통 음식'이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과거 상인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노점 음식들이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광장시장의 3대 미식

  • 빈대떡: 맷돌로 직접 간 녹두 반죽을 기름에 튀기듯 구워내는 빈대떡은 광장시장의 시그니처 메뉴입니다. 저렴한 가격과 풍성한 양으로 서민들의 술안주이자 한 끼 식사가 되어왔습니다.
  • 육회: 종로 4가 일대의 육회 골목은 신선한 고기와 특유의 양념으로 젊은 층의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 마약김밥: 단출한 재료지만 겨자 소스에 찍어 먹는 중독적인 맛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습니다.

글로벌 K-컬처의 랜드마크

2010년대 이후 광장시장은 넷플릭스 등 글로벌 미디어를 통해 소개되며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되었습니다. 또한, 시장 2층에 형성된 '구제 시장'은 빈티지 문화를 향유하는 MZ세대들에게 보물찾기 같은 공간으로 사랑받으며 시장의 연령대를 대폭 낮추는 역할을 했습니다.

5. 광장시장의 현재적 의미와 미래

광장시장은 이제 단순히 오래된 시장이 아닙니다. 120년 전 민족 자본으로 세워진 '경제적 독립의 상징'이었으며, 전후 한국 사회의 '역동적인 생명력'을 증명하는 증거입니다. 현대적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가 주지 못하는 '사람 사는 냄새'와 '정'이 살아있는 공간으로서, 광장시장은 디지털 시대에도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지닙니다.

현재 광장시장은 전통의 보존과 현대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청결한 환경 개선과 투명한 가격 정책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고, 고유의 역사 스토리를 콘텐츠화하여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1905년부터 이어진 광장시장의 불빛은 앞으로의 100년도 서울의 밤을 밝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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